자동차의 고장, 유럽 도시는 왜 친환경차를 선택했나?
베를린,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의 친환경 자동차 정책 비교
자동차는 유럽에서 태어났다. 벤츠, BMW, 폭스바겐, 르노, 푸조 등 수많은 브랜드들이 이 대륙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지금 유럽의 주요 도시는 점점 내연기관차와의 이별을 선언하고 있다. ‘자동차의 고장’이라 불리던 도시들이 이제는 친환경 모빌리티 전환의 선두에 서 있다. 도시는 더 이상 단순히 자동차가 달리는 공간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교통과 기후 대응이 조화를 이루는 생태계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2025년 현재, 유럽 대륙을 대표하는 네 도시인 베를린,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친환경 자동차 보급을 확대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전략의 차이는 무엇인지 심층적으로 비교해본다.
베를린: 느리지만 확실한 독일식 전환
독일은 자동차 산업의 본산이자 유럽 최대의 수출국으로서, 친환경 전환에 있어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하지만 베를린은 다르다. 수도이자 문화·행정 중심지인 베를린은 대기질 개선과 도시 경쟁력 강화를 위해 환경 정책을 일찍부터 추진해왔다. 2008년, 독일 최초로 도심 진입 제한 구역인 ‘Umweltzone’를 도입하며 본격적인 친환경 도시 전환을 시작했다.
2025년 현재 베를린은 친환경차 중심 교통체계로의 전환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시행 중이다. 도심 내 노후 디젤차 운행은 점차 금지되고 있으며, 신규 차량 등록 시 저공해차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전기차 충전소도 2020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해 약 3,500기 이상이 운영되고 있으며, 2030년까지 전체 차량의 40%를 무공해차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런던: ULEZ, 규제 중심의 모빌리티 혁신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차량 배출가스 규제 제도 중 하나인 ULEZ(Ultra Low Emission Zone)를 운영 중인 도시다. 2019년 처음 도입된 이후 2023년부터는 런던 전역으로 확대 적용되며, 사실상 런던은 전 지역이 배출 규제 구역으로 전환되었다.
ULEZ는 유로6 디젤 또는 유로4 가솔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차량에 대해 하루 12.5파운드(약 2만 원)의 통행료를 부과한다. 이는 시민들에게 전기차 전환을 유도하는 강력한 인센티브로 작용했고, 런던 내 전기차 보급률은 2020년 약 7%에서 2025년 현재 약 32%로 급상승했다. 이 외에도 충전소 1만기 이상 설치, 전기버스 전환, 택시 차량의 100% 무공해화 정책도 함께 추진되고 있다.
파리: 디젤의 도시에서 탈탄소의 도시로
한때 프랑스 전체 차량의 약 70%가 디젤차였을 만큼, 파리는 디젤차 중심의 교통 구조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2015년을 기점으로 디젤차에서 전기차로의 급격한 전환이 시작되었다. Crit’Air(크리테르) 제도는 차량의 배출 등급을 6단계로 나누고, 등급에 따라 운행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2025년 현재 Crit’Air 4등급 이하 차량은 파리 시내 대부분의 지역에 진입이 금지되어 있다. 이는 주로 2006년 이전 디젤차와 1997년 이전 가솔린 차량을 포함한다. 파리시는 2030년까지 모든 내연기관 차량의 운행을 금지한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했으며, 이를 위해 공공 충전 인프라 확대, EV 구매 보조금 제공, 저공해 차량 공유 프로그램 활성화 등을 병행하고 있다.
암스테르담: 자전거 도시에서 스마트 EV 도시로
암스테르담은 유럽 내에서도 가장 일찍부터 도시 친환경화를 추진한 도시 중 하나다. 자전거 도로망과 대중교통이 발달한 도시 구조 덕분에 자동차 사용률 자체가 낮았던 이 도시는, 최근 전기차 중심 도시로 탈바꿈 중이다.
2025년 현재 암스테르담시는 신규 등록 차량의 약 40%가 전기차이며, 전체 차량 중 전기차 비중은 15%를 넘어섰다. 특히 물류·운송 차량의 전기화 비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택배용 전기 밴과 공유 전기차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다. 2030년까지 도시 전역을 ‘Zero Emission Zone’으로 전환한다는 계획 하에, 총 2만 5천 개 이상의 충전 인프라가 설치될 예정이다.
도시별 전기차 보급률 비교
- 런던: 전체 등록차량 중 약 32%가 EV 또는 PHEV
- 파리: 디젤차 비율 35% 이하로 떨어졌으며, 전기차 등록률 약 22%, 전기차 보급은 지속 상승
- 암스테르담: 전체 차량의 15%, 신규 등록차 중 40%가 전기차
- 베를린: EV 보급률 18% 내외, 연간 15~20% 성장세 유지
보급률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성장 속도와 도시의 정책 연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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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어떻게 공간을 바꾸고 있는가?
친환경차 전환은 단지 자동차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전체 공간 구조의 변화와 직결된다.
- 파리는 주요 도로에서 차량 차선을 줄이고 자전거 전용도로를 확대했으며, 자동차 주차 공간을 줄여 보행자와 녹지 공간으로 전환하고 있다.
- 런던은 ‘녹지 회랑(Green Corridor)’ 조성, 보행자 중심 구역 확대 등 도시 생태계와 연계된 교통 정책을 추진 중이다.
- 암스테르담은 '차 없는 거리'를 도입해 도심의 교통 구조를 재설계 중이다.
이런 변화는 도시가 단순히 '전기차를 더 도입하는 것'을 넘어, '교통과 환경의 조화로운 공존'을 지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책 비교: 공통점과 차이점
이 네 도시의 공통점을 다음과 같다:
- 단계적 내연기관차 퇴출 로드맵 수립
- 전기차 보조금 및 충전 인프라 지원
- 진입 규제 구역 설정을 통한 정책 실효성 확보
반면 도시별로 전략에는 차이가 있다.
런던은 규제 중심의 강한 드라이브, 파리는 등급제와 인프라 병행,
베를린은 산업 현실 반영한 점진적 접근, 암스테르담은 도시 설계 통합형 접근이 특징이다.
시민 반응과 갈등: 정책의 이면
- 런던에서는 ULEZ 확대에 반발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있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단속 카메라 훼손 사례도 발생했다.
- 파리에서는 차량 제한 조치가 저소득층 운전자에게 불리하다는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 베를린과 암스테르담은 정책 설계 단계에서부터 시민 의견을 반영하는 ‘참여 기반 행정’을 도입해 상대적으로 갈등이 적은 편이다. 특히 암스테르담은 전환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차량 공유와 저소득층 대상 보조금 정책을 병행하고 있다.
정책의 성공은 규제 강도보다도 시민의 수용성과 사회적 합의에 달려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유럽의 딜레마: 도시와 산업의 엇박자
유럽의 도시들은 내연기관차 퇴출을 서두르고 있지만, 자동차 산업은 그만큼 빠르게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도시들은 환경규제와 공간 재설계를 통해 변화를 이끌고 있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전기차 수요 둔화와 생산 비용 부담, 고용 구조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방향은 같지만, 현실이 만들어내는 속도 차이가 분명한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유럽 완성차 업체들은 EV 투자 일정을 조정하거나 하이브리드 중심의 절충안을 꺼내 들고 있다. 폭스바겐과 BMW는 EV 전환을 이어가면서도 내연기관 모델을 계속 유지하고 있고, 일부 국가는 e-연료를 통한 예외 적용까지 추진 중이다. 도시와 산업이 같은 목표를 향해 가고 있지만, 서로 다른 속도로 걷고 있다는 점에서 이것이 유럽식 딜레마라 불리는 이유다.
유럽 도시들이 보여주는 미래차의 방향
2025년 현재 유럽 주요 도시는 기후 위기 대응, 대기질 개선, 도시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해법으로 전기차 중심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이는 자동차 산업의 변화뿐만 아니라 도시가 스스로 재설계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서울을 포함한 아시아 도시들도 이제는 단순한 친환경차 보급을 넘어, 도시 구조와 시민 삶의 방식을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유럽 도시들의 사례는 그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좋은 참고서가 될 수 있다.
다음 편에서는 북미 도시들(LA, 뉴욕, 밴쿠버)의 사례를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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